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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낭송 가을음악회

2. 제 7회 지정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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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국명시낭송가협회 작성일20-03-05 23:19 조회82회 댓글0건

본문

 

8. 별까지는 가야 한다 /이기철

 우리 삶이 먼 여정일지라도

걷고 걸어 마침내 하늘까지는 가야 한다

닳은 신발 끝에 노래를 달고

걷고 걸어 마침내 별까지는 가야 한다.

 

​우리가 깃든 마을엔 잎새들 푸르고

꽃은 칭찬하지 않아도 향기로 핀다

숲과 나무에 깃들인 삶들은

아무리 노래해도 목쉬지 않는다

사람의 이름이 가슴으로 들어와 마침내

꽃이 되는 걸 아는데

나는 쉰 해를 보냈다

미움도 보듬으면 노래가 되는 걸 아는데

나는 반생을 보냈다

 

나는 너무 오래 햇볕을 만졌다

이제 햇볕을 뒤로하고 어둠 속으로 걸어가

별을 만져야 한다

나뭇잎이 짜 늘인 그늘이 넓어

마침내 그것이 천국이 되는 것을

나는 이제 배워야 한다.

먼지의 세간들이 일어서는 골목을 지나

성사(聖事)가 치러지는 교회를 지나

빛이 쌓이는 사원을 지나

마침내 어둠을 밝히는 별까지는

나는 걸어서, 걸어서 가야 한다.

 

9. 언제 삶이 위기 아닌 적 있었던가 / 이기철

 

껴입을수록 추워지는 것은 시간과 세월뿐이다.

돌의 냉혹, 바람의 칼날,

그것이 삶의 내용이거니

생의 질량 속에 발을 담그면

몸 전체가 잠기는 이 숨 막힘

 

설탕 한 숟갈의 회유에도 글썽이는 날은

이미 내가 잔혹 앞에 무릎 꿇은 날이다.

슬픔이 언제 신음소릴 낸 적 있었던가

고통이 언제 뼈를 드러낸 적 있었던가

목조 계단처럼 쿵쿵거리는,

이미 내 친구가 된 고통들

 

그러나 결코 위기가 우리를 패망시키지는 못한다.

내려칠수록 날카로워지는 대장간의 쇠처럼

매질은 따가울수록 생을 단련시키는 채찍이 된다.

이것은 결코 수식이 아니니

고통이 끼니라고 말하는 나를 욕하지 말라.

 

누군들 근심의 밥 먹고

수심의 디딤돌 딛고 생을 건너간다

아무도 보료 위에 누워 위기를 말하지 말라

위기의 삶만이 꽃 피는 삶이므로

 

  

10. 마른 살의 동화 / 이기철

                       

먹고 사는 일 걱정되지 않으면

나는 부는 바람 따라 길 떠나겠네

가다가 찔레꽃 향기라도 스며오면

들판이든지 진흙땅이든지

그 자리에 서까래 없는 띠 집을 짓겠네.

 

거기에서 어쩌다 아지랑이 같은 여자 만나면

그 여자와 푸성귀 같은 사랑 나누겠네.

푸성귀 같은 사랑 익어서

보름이고 한 달이고 같이 잠들면

나는 햇볕 아래 풀씨 같은 아이 하나 얻겠네

 

먹고 사는 일 걱정되지 않으면

나는 내 가진 부질없는 이름, 부질없는 조바심,

흔들리는 의자, 아파트 문과 복도마다 사용되는

다섯 개의 열쇠를 버리겠네.

 

발은 수챗물에 담겨도 머리는 하늘을 향해 노래하겠네.

슬픔이며 외로움이며를 말하지 않는

놀 아래 울음 남기고 죽은 노루는 아름답네

수노루 만나면 등성이에서라도 새끼 배고

젖은 아랫도리 말리지 않고도

푸른 잎 속에 스스로 뼈를 묻는

산 노루 되어 나는 살겠네.

      

11.마법의 새 / 박두진

               

아직도 나는 너를 사랑하고 있다

너는 하늘에서 내려온 몇 번만 날개 치면 산골짝의 꽃

몇 번만 날개 치면 먼 나라 공주로,

물에서 올라올 땐 푸르디푸른 물의 새

바람에서 빚어질 땐 희디하얀 바람의 새

불에서 일어날 땐 붉디붉은 불의 새로

아침에서 밤 밤에서 꿈에까지

내 영혼의 안과 밖 가슴 속 갈피갈피를 포릉대는 새여.

 

어느 때는 여왕으로 절대자로 군림하고

어느 때는 품에 안겨 소녀로 되어 흐느끼는

돌아설 땐 찬바람 빙벽 속에 화석하며 끼들끼들 운다.

너는 날카로운 부리로 내 심장의 뜨거움을 찍어다가

벌판에 꽃 뿌리고 내가 싫어하는 짐승 싫어하는 뱀들의

그것의 코빼기를 발톱으로 덮쳐

뚝뚝 듣는 피를 물고 되돌아올 때도 있다.

 

너는 홀로 쫓겨 숲에 우는 어린 왕자의 말이다가

밤마다 달빛 섬에 홀로 우는 학이다가

오색 훨훨 무지개 속 구름속의 천사이다가

돌로 치는 군중 속의 피 흐르는 창녀이다가

한 번 맡으면 쓰러지는 독한 꽃의 향기이다가

새여.

느닷없이 얼키설키 영혼을 와서 어지럽혀

나도 너를 알 수 없고 너도 나를 알 수 없게

눈으로 서로 보면 눈이 넋으로 서로 보면 넋이

타면서 서로 아파 깊게깊게 앓는,

서로 오래 영혼끼리 꽃으로 서서 우는

서로 찾아 하늘 날며 종일을 울어예는

어쩔까 아 징징대며 짖어오는 울음

아직도 너를 나는 사랑하고 있다.

 

12. 연탄 한 장 / 안도현

             

또 다른 말도 많고 많지만

삶이란, 나 아닌 그 누구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 되는 것

 

방구들 선득선득해지는 날부터 이듬해 봄까지

조선팔도 거리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은

연탄차가 부릉부릉

힘쓰며 언덕길 오르는 거라네

해야 할 일 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는 듯이

연탄은, 일단 제 몸에 불이 옮겨 붙었다 하면

하염없이 뜨거워지는 것

매일 따스한 밥과 국물 퍼먹으면서도 몰랐네

온 몸으로 사랑하고 나면

한 덩이 재로 쓸쓸하게 남는 게 두려워

여태껏 나는 그 누구에게 연탄 한 장도 되지 못하였네

 

생각하면

삶이란

나를 산산이 으깨는 일

눈 내려 세상이 미끄러운 어느 이른 아침에

나 아닌 그 누가 마음 놓고 걸어갈

그 길을 만들 줄도 몰랐었네, 나는

  

 

13.  검정 고무신 /한석산

  

눈 덮인 초가지붕 아랫목 화롯불이 피어나던

뭔가 아련하고 애잔한 느낌의 시절

인생의 길모퉁이서 만난 사람들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 나를 사랑했던 사람들

지쳐 버린 내 마음 아는 이 없어도

진한 그리움에 가슴 저린 보고픔이 이는데

 

이름만 불러도 눈물이 아리 아릿한

나의 인생에 함께 했던 수많은 얼굴

그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사는 게 힘들어 잊고 살았던

사랑했던 사람들의 발자취를 묻어둔

검정 고무신 시절 황소보다 못한 찬밥 덩어리 같은

살아온 지난날을 생각하니 사는 게 눈물입니다.

 

가고 싶은 그 시절 그리움 속 깊은 사랑

내 어린 날 어머니 아버지 지금 나를 보시면

얼마나 만지고 싶고 말하고 싶으실까

울고 싶은 가슴 짓누르는

아픔으로 그려지는 어머니 엄마 보고 싶어요.

지난 인생길에 함께 했던 잊혀진 얼굴이 보고 싶다.

 

14.어머니의 반짇고리 / 한석산

 

자식들 땟거리 걱정에 시작한 어머니의 삯바느질

어머니 눈물에 젖은 등잔불 밑에

늘 줄이고 늘이고

바느질하는 모습은 내게 익숙한 삶이었다.

어릴 땐 엄마 하고 부르기만 하면

먹을 것이 나오는 줄 알았다.

불효 심한 자식 걱정에 긍긍하며 살아온 세월

어찌하여 인생길이 그다지도 고단 한가

어머니의 일생은 여자의 일생 같은 시절을 보내셨다.

밥은 먹고 다니니? 밥 잘 먹고 다녀라

아야! 끼니 거르지 말고, 꼭 챙겨 먹어라, 알았지?

 지금은 어머니보다 더 눈이 어두운 아내 곁에서

세상사 엉킨 실타래를 풀고 바늘귀를 꿰 주며

실과 바늘처럼 삶의 솔기 없는

자투리만 남은 천 조각 같은 생을 한 땀 한 땀 시침질한다.

 

 

 

15.그리운 바다 성산포 / 이생진

                              

살아서 고독했던 사람, 그 빈자리가 차갑다

아무리 동백꽃이 불을 피워도

 살아서 가난했던 사람 그 빈자리가 차갑다 

 

 나는 떼어 놓을 수 없는 고독과 함께

배에서 내리자마자 방파제에 앉아 술을 마셨다

해삼 한 토막에 소주 두잔, 

 이 죽일 놈의 고독은 취하지 않고

나만 등대 밑에서 코를 골았다 

 

 술에 취한 섬 물을 베고 잔다,

파도가 흔들어도 그대로 잔다 

 저 섬에서 한 달만 살자.

저 섬에서 한 달만 뜬 눈으로 살자 

 저 섬에서 한 달만 그리움이 없어질 때 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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