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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낭송 가을음악회

제7회 지정시 총2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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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국명시낭송가협회 작성일20-03-05 23:22 조회13회 댓글0건

본문

 

 

16. 자화상 / 유안진  

 

 

한 생애를 살다 보니

나는 나는 구름의 딸이요 바람의 연인이라

비와 이슬이 눈과 서리가 강물과 바닷물이

뉘기 아닌 나였음을 알아라

 

수리부엉이 우는 이 겨울도 한밤중

뒤꼍 언 텃밭을 말 달리는 눈바람에

마음 행구는 바람의 연인

가슴속 용광로에 불 지피는 황홀한 거짓말을

오오 미쳐볼 뿐 대책 없는 불쌍한 희망을

내 몫으로 오늘 몫으로 사랑하여 흐르는 일

 

삭아질수록 새우 젓갈 맛 나듯이

때 얼룩에 절수록 인생다워지듯이

산다는 것도 사랑한다는 것도

때 묻히고 더럽혀지며

진실보다 허상에 더 감동하며

정직보다 죄업에 더 집착하며

어디론가 쉬지 않고 흘러가는 것이다

 

나란히 누웠어도 서로 다른 꿈을 꾸며

끊임없이 떠나고 떠도는 것이다

멀리멀리 떠나갈수록

가슴이 그득히 채워지는 것이다

갈 데까지 갔다가는 돌아오는 것이다

하늘과 땅만이 살 곳은 아니다

허공이 오히려 살만한 곳이며

떠돌고 흐르는 것이 오히려 사랑하는 것이다

 

돌아보지 않으리

문득 돌아보니

나는 나는 흐르는 구름의 딸이요

떠도는 바람의 연인이라.

 

17.망향가 / 황송문

                

어매여, 시골 울 엄매여

어매 솜씨에 장맛이 달아

시래기 국 잘도 끓여주던 어매여

어매 청춘 품앗이로 보낸 들녘

가르마 트인 논두렁길을

내 늘그막엔 밟아 볼라요.

 

동지 날 팥죽을 먹다가

문득, 걸리던 어매여

새알심이 걸려 넘기지를 못하고

그리버 그리버, 울 엄매 그리버서

빌딩 달 하염없이 바라보며

속울음 꺼익꺼익 울었지러

 

앵두나무 우물가로 시집오던 울 엄매

새벽마다 맑은 물 길어 와서는

정화수 축수, 축수 치성을 드리더니

동백기름에 윤기 자르르한 머리카락은

뜬구름 세월에 파뿌리 되었지러

 

아들이 유학을 간다고

송편을 쪄 가지고 달려오던 어매여

구만리장천에 월매나 시장허꼬

비행기 속에서 먹어라, 잉!

점드락 갈라믄 월매나 시장허꼬

아이구 내 새끼, 내 새끼야!

 

돌아서며 눈물을 감추시던 울 엄매

어매 뜨거운 심정이 살아

모성의 피되어 가슴 절절 흐르네

어매여, 시골 울 엄매여

어매 잠든 고향 땅을

 

내 늘그막엔 밟아 볼라요!

지나는 기러기도 부르던 어매처럼

나도 워리워리 목청껏 불러들여

인정이 넘치게 살아 볼라요

자운영 환장할 노을진 들녘을

미친 듯이 미친 듯이 밟아 볼라요!.

 

18. 알 수 없어요. / 한용운

 

바람도 없는 공중에

수직(垂直)의 파문(波紋)을 내이며

고요히 떨어지는 오동잎은

누구의 발자취입니까?

지리 한 장마 끝에 서풍에 몰려가는

무서운 검은 구름의 터진 틈으로

언뜻언뜻 보이는 푸른 하늘은

누구의 얼굴입니까?

꽃도 없는 깊은 나무에 푸른 이끼를 거쳐서

옛 탑(塔) 위의 고요한 하늘을 스치는

알 수 없는 향기는 누구의 입김입니까?

근원은 알지도 못할 곳에서 나서

돌부리를 울리고 가늘게 흐르는

작은 시내는 굽이굽이 누구의 노래입니까?

연꽃 같은 발꿈치로 가이없는

바다를 밟고 옥 같은 손으로 끝없는

하늘을 만지면서 떨어지는 날을

곱게 단장하는 저녁놀은 누구의 시(詩)입니까?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됩니다.

그칠 줄을 모르고 타는 나의 가슴은

누구의 밤을 지키는 약한 등불입니까?

 

   

19.둥근 어머니의 두레밥상 - 정일근

 

 

모난 밥상을 볼 때마다 어머니의 두레밥상이 그립다

 

고향 하늘에 떠오르는 한가위 보름달처럼

 

달이 뜨면 피어나는 달맞이 꽃처럼

 

어머니의 두레밥상은 어미니가 피우시는 사랑의 꽃밭

 

내 꽃밭에 앉은 사람 누군들 귀하지 않겠느냐

 

 

 

식구들 모이는 날이면 언제나 펼치시는 두레밥상

 

둥글게 둥글게 제비새끼처럼 앉아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 숟가락 높이들고

 

골고루 나누시는 고기반찬 착하게 받아먹고 싶다.

 

세상의 밥상은 이전투구의 아수라장

 

 

한 끼 밥을 먹기 위해, 우리는

 

이미 날카로운 발톱을 가진 짐승으로 변해 버렸다.

 

밥상에서 밀리면 벼랑으로 밀리는 정글의 법칙 속에서

 

나는 오랫동안 하이에나처럼 떠돌았다.

 

짐승처럼 썩은 고기를 먹기도 하고, 내가 살기 위해

 

남의 밥상을 엎어버렸을 때도 있었다.

 

이제는 돌아가 어머니의 두레밥상에 앉고싶다.

 

 

어머니에게 두레는 모두를 귀히 여기는 사랑

 

귀히 여기는 것이 진정한 나눔이라 가르치는

 

어머니의 두레밥상에 지지베베 즐거운

 

제비새끼로 앉아

 

어머니의 사랑 두레 먹고싶다.

   

 20.금강산은 길을 묻지 않는다 이 근 배                                    

 

 새들은 저희들끼리 하늘에 길을 만들고

물고기는 너른 바다에서도 길을 잃지 않는데

사람들은 길을 두고 길 아닌 길을 가기도 하고

길이 있어도 가지 못하는 길이 있다.

 

산도 길이고 물도 길인데 산과 산 물과 물이

서로 돌아누워 내 나라의 금강산을 가는데

반세기 넘게 기다리던 사람들

이제 봄, 여름, 가을, 겨울 앞 다투어 길을 나서는 구나

참 이름도 개골산, 봉래산, 풍악산 철따라 다른 우리 금강산

보라, 저 비로봉이 거느린 일만 이천 멧부리

우주만물의 형상이 여기서 빚고 여기서 태어났구나.

 

깎아지른 바위는 살아서 뛰며 놀고 흐르는 물은 은구슬 옥구슬이구나.

소나무, 잣나무는 왜 이리 늦었느냐 반기고 구룡폭포 천둥소리 닫힌 세월을 깨운다.

그렇구나 금강산이 일러주는 길은 하나 한 핏줄 칭칭 동여매는 이 길 두고

우리는 너무도 먼 길을 돌아왔구나 분단도 가고 철조망도 가고

형과 아우 겨누던 총부리도 가고 손에 손에 삽과 괭이 들고

평화의 씨앗, 자유의 씨앗 뿌리고 가꾸며 오순도순 잘 사는 길을 찾아왔구나.

한 식구 한솥밥 끓이며 살자는데 우리가 사는 길 여기 있는데

어디서 왔느냐고 어디로 가느냐고 이제 금강산은 길을 묻지 않는다.

 

 21. 石 門 / 조지훈

          

당신의 손끝만 스쳐도 여기 소리 없이 열릴 돌문이 있습니다.

뭇사람이 조바심치나 굳이 닫힌 이 돌문 안에는 석벽난간

열두 층계 위에 이제 검푸른 이끼가 앉았습니다.

 

당신이 오시는 날까지는 길이 꺼지지 않을 촛불 한 자루도 간직하였습니다.

이는 당신의 그리운 얼굴이 이 희미한 불앞에 어리울 때까지는 천년이 지나도

눈감지 않을 저의 슬픈 영혼의 모습입니다.

 

길숨한 속눈썹에 항시 어리우는 이 두어 방울 이슬은 무엇입니까

당신이 남긴 푸른 도포 자락으로 이 눈썹을 씻으렵니까.

두 볼은 옛날 그대로 복사꽃빛이지만 한숨에 절로 입술이

푸르러 감을 어찌합니까.

 

몇만 리 굽이치는 강물을 건너와 당신의 따슨 손길이

저의 흰 목덜미를 어루만질 때 그때야 저는 자취도 없이

한줌 티끌로 사라지겠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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